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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건넨 따뜻한 인사,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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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시간전
  ▲(좌측) 시인 이영하  &   ▲(우측) 김왕식 평론가
 
 
△ 이영하 시인과 김왕식 문학평론가가 나눈 ‘문학의 온기’…시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읽다
 
〔내외매일뉴스·내외매일신문=방명석 기자〕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았다. 그 마음을 읽은 문학평론가는 자신의 언어로 시인의 삶을 조심스럽게 비춰주었고, 시인은 그 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감사의 인사를 받은 평론가는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제가 한 일은 시인님의 삶과 시 속에 이미 들어 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잠시 손으로 가리켜 보인 것뿐”이라고 답했다. 한 편의 시에서 시작된 만남이 감사로 이어지고, 그 감사가 다시 겸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문학에서 만나고 싶은 가장 따뜻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를 둘러싸고 오간 김왕식 문학평론가와 이영하 시인의 글에는 화려한 수사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서로의 문장을 평가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앞세우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그 마음을 알아준 데 대해 감사하며, 다시 그 감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문학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을 수 있는 따뜻한 다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는 오래도록 앞만 보고 걸어온 한 사람이 이제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다. “뒤에서 부르는 바람도 곁에 피는 꽃도 몇 번이나 지나쳤다”는 고백에서 시작해 경안천의 물소리에 걸음을 늦추고 갈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마침내 발견한 삶의 여유와 성찰이 담겨 있다.
 
특히 “하늘을 날 때에는 목적지의 좌표가 필요했지만 땅에 내려온 뒤에는 잠시 멈출 자리가 필요했다”는 시구는 이영하 시인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전투 조종사로 하늘을 날았던 그의 삶에서 ‘좌표’는 단순한 방향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확한 판단과 긴장, 책임이 뒤따르는 삶의 기준이었을 것이며, 그런 시간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 이제 땅에 내려와 ‘잠시 멈출 자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의 의미를 넘어 치열했던 삶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과 주변의 사람, 자연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인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영하 시인은 오랫동안 하늘을 삶의 무대로 삼아온 인물이다. 전투 조종사로 하늘을 날았고 공군 참모차장을 지내며 국가 안보의 최전선을 경험했으며, 이후 외교관으로 세계 여러 나라와 문화를 마주했다. 누구보다 빠르고 긴장된 삶을 살아온 그가 이제는 시를 통해 삶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하늘과 비행, 귀환은 단순한 문학적 소재가 아니라 오랜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영하 시인의 시를 김왕식 문학평론가는 시어만으로 읽지 않았다. 그는 시의 행간에 머물러 있는 시인의 삶까지 함께 바라봤다. 전투 조종사에게 하늘은 우리가 올려다보는 낭만적인 푸른 공간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을 것이라며, 한순간의 판단이 생과 사를 가르고 작은 방심조차 허락되지 않는 긴장의 공간이었을 그 하늘을 평생 살아온 사람이 이제 땅에 내려와 천천히 걷는 법을 이야기한다는 데서 「쉼과 여유」의 깊은 의미를 발견했다.
 
김왕식 평론가는 “높이 날아본 사람만이 땅의 따뜻함을 안다”며 “멀리 떠나본 사람만이 돌아온다는 말의 깊이를 알고, 날개를 활짝 펴본 사람만이 날개를 접는 일이 얼마나 큰 결단인지 안다”고 썼다. 이어 이영하 시인의 작품을 두고 “비행을 마친 사람의 시가 아니라 비로소 인간에게 도착한 사람의 시”라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삶을 단순한 이력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이 어떻게 한 편의 시로 다시 태어났는지를 읽어낸 것이다.
 
김 평론가의 평론은 결국 ‘비행’보다 ‘귀환’에 가까웠다. 젊은 날의 날개가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가기 위한 것이었다면 세월을 지나온 뒤의 날개는 오히려 누군가의 마음을 품고, 곁에 머물며, 삶의 깊이를 바라보기 위해 접힐 수도 있다는 해석이었다. “날개를 접는 것은 비행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비행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문장은 이영하 시인의 삶과 시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학적 의미로 남았다.
 
이 평론을 받아 든 이영하 시인은 김왕식 평론가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시 한 편을 이토록 깊고 세밀하게 읽어준 것에 감사하면서 특히 전투 조종사로 살아온 자신의 시간과 비행의 긴장, 떠남과 귀환, 그리고 날개를 접는 순간의 의미까지 풀어낸 평론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영하 시인은 “마치 평생 입고 있던 조종복의 지퍼를 하나씩 풀어 보이듯 조종사로 살아온 제 내면의 모습까지 너무도 세세하게 들여다보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이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느꼈기에 “그만큼 제 시를 깊이 사랑하고 읽어주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니 큰 영광이 되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학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시작됐다. 시인의 감사에 대해 평론가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시인의 삶을 다시 앞으로 세웠다.
 
김왕식 평론가는 “평론가는 시인의 삶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며 “평론의 문장은 작품보다 앞설 수 없고, 평론가의 사유 또한 한 사람이 살아낸 생의 무게를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제가 한 일은 시인님의 삶과 시 속에 이미 들어 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잠시 손으로 가리켜 보인 것뿐”이라며 “그 빛을 만들어 낸 사람은 제가 아니라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영하 시인님 자신”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가 작품을 해석하고 작가가 그 평론에 감사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두 사람의 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서로의 자리에서 자신의 공을 앞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평론가의 따뜻한 시선을 고맙게 받아들였고, 평론가는 그 감사 앞에서 다시 시인의 삶을 세워주었다. 한 사람은 “깊이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빛은 원래 당신의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답한 셈이다.
 
김왕식 평론가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조용히 다리를 놓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24년 한국문학신문 공모전 평론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평론가의 역할에 대해 “평론가는 작가의 머슴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평론관을 밝힌 바 있다. 평론가의 언어가 작품 위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를 바라본 김 평론가의 시선 역시 그가 지켜온 문학관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해석을 앞세우기보다 시인의 삶과 작품 속에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찾아 독자에게 보여주고, 정작 그 의미를 만들어 낸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시인이라고 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평론가로서의 역할은 작품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가진 빛을 독자에게 비춰주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이번 만남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영하 시인 역시 그 마음에 화답했다. 그는 “이제는 날개를 접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평론가님의 글을 읽고 보니 날개를 접는다는 것은 비행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비행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하며 “앞으로 더 낮게 바라보고 더 깊이 생각하며 사람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젊은 날의 이영하 시인에게 하늘은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많은 시간을 지나온 지금 그의 하늘은 조금 달라졌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천천히 바라보는 일이 중요해졌고, 더 멀리 가는 것보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소중해졌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날개를 접는다’는 것은 패배나 멈춤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깊이로 들어가기 위한 선택처럼 읽힌다.
 
김왕식 평론가는 앞으로 이영하 시인이 써 내려갈 시에 대해 더 높이 날거나 더 멀리 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 외로운 사람 곁에 잠시 앉아주며, 지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한 줄의 시를 건네는 일이야말로 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비행일지 모른다고 했다.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나 다시 시인에게 돌아왔다. 시가 평론을 만나고, 평론이 감사로 이어지고, 감사가 다시 겸손으로 돌아오면서 한 편의 시는 두 사람의 마음을 잇는 작은 다리가 됐다. 그리고 그 다리는 이제 독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앞만 바라본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이 올라야 하며,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곁에 피어난 꽃을 지나치고, 뒤에서 불러오는 바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며, 가까운 사람의 마음조차 놓칠 때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는 잠시 걸음을 늦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를 읽은 김왕식 평론가의 글과 그 글에 답한 시인의 감사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좋은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읽게 하고, 좋은 사람은 그 문학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다.
 
하늘을 오래 날았던 사람은 이제 땅을 바라보고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보다 천천히 머무는 풍경을 바라보고, 목적지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더 높이 오르는 것보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려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평론가는 시인의 삶에 이미 존재했던 작은 빛을 발견해 조용히 독자 앞에 내놓았다.
 
어쩌면 이것이 문학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일 것이다. 문학은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 하지만 그 삶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해 다시 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읽어 주었을 때 비로소 지나온 길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은 단순한 시인과 평론가의 대화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그리고 감사 앞에서 다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만나 작은 문학적 미담이다.
 
「쉼과 여유」라는 한 편의 시가 사람을 만났고, 그 시를 읽은 한 사람의 마음이 평론이 되어 다시 시인에게 돌아왔다. 시인은 감사했고, 평론가는 자신을 낮췄으며, 그 과정에서 문학은 작품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언어가 됐다.
 
높이 날았던 사람에게 이제 가장 아름다운 비행은 어쩌면 더 이상 높이 오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날개를 접고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한 줄의 시를 건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머무는 것이야말로 삶의 후반부에 가능한 가장 깊은 비행일 것이다.
 
이영하 시인의 「쉼과 여유」와 김왕식 문학평론가가 나눈 따뜻한 글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한 편의 시가 사람을 만났고, 한 사람의 진심이 또 다른 사람의 진심을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리에게 문학이 아직 따뜻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다.
 
 
 
 
제목: 쉼과 여유
 
(​하늘시인 이영하)
 
나는 너무 오래 앞만 보고 걸었다.
뒤에서 부르는 바람도
곁에 피는 꽃도 몇 번이나 지나쳤다.
 
​하늘을 날 때에는
목적지의 좌표가 필요했지만
땅에 내려온 뒤에는
잠시 멈출 자리가 필요했다.
 
경안천 물소리에 걸음을 늦추고
갈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바라보며
비로소 알았다.
 
인생은
채우는 일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빈 찻잔 하나에도
오래 머무는 향기가 있고
말을 아낀 하루에도
사람의 마음은 자란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려 한다.
늦게 피는 해도 바라보고
먼 사람의 안부도 기다리면서
남은 날의 가장 좋은 속도는
서두르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메시지 원문)
 
▼ 이영하 시인의 감사 메세지
존경하는 김왕식 평론가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날개를 접을 줄 아는 사람의 시---시인 이영하 시의 비행미학과 귀환의 존재론>이라는 제목부터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쉼과 여유"라는 시 한 편을 이토록 깊고 세밀하게 읽어 주시고, 제가 살아온 전투 조종사의 시간과 비행의 긴장, 떠남과 귀환. 그리고 날개를 접는 순간의 의미까지 철학적 사유로 풀어 주신 정성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론을 읽으며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마치 평생 입고 있던 조종복의 지퍼를 하나씩 풀어 보이듯, 조종사로 살아온 제 내면의 모습까지 너무도 세세하게 들여다 보신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제 시를 깊이 사랑하고 읽어 주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니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특히 비행을 떠남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삶으로 돌아오는 귀환의 여정으로 읽어 주신 통찰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이제는 날개를 접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지만, 평론가님의 글을 읽고 보니 날개를 접는다는 것은 비행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비행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귀한 글로 제 시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밝혀주신 김왕식 평론가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앞으로 더 낮게 바라보고 더 깊이 생각하며 사람의 마음에 오래 머무는 시를 쓰겠습니다.
 
 
▼ 김왕식 평론가의 감사 메시지
존경하는 이영하 시인님께! 보내주신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제가 시인님의 시를 읽고 한 편의 평론을 썼는데, 외려 시인님께서 보내주신 답글 한 편이 제 마음을 더 깊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보다 먼저 송구하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한 사람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몇 줄의 문장을 읽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서 견뎌온 한 생의 시간을 읽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쉼과 여유」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곳에는 단지 쉬고 싶은 사람의 마음만 있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높은 하늘을 건너고 수많은 긴장과 결단의 순간을 지나온 사람이 이제야 지나쳤던 꽃 한 송이와 뒤에서 불러오던 바람과 곁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는 한 인간의 늦은 귀환이 있었습니다.
 
전투 조종사에게 하늘은 우리들이 올려다보는 낭만의 푸른 공간과는 전혀 다른 하늘이었을 것입니다. 한순간의 판단이 생과 사를 가르고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곳 그 하늘을 평생 살아온 사람이 이제 땅에 내려와 천천히 걷는 법을 이야기하고 쉼과 여유를 노래한다는 사실이 제게는 참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높이 날아본 사람만이 땅의 따뜻함을 압니다. 멀리 떠나본 사람만이 돌아온다는 말의 깊이를 압니다. 날개를 활짝 펴본 사람만이 날개를 접는 일이 얼마나 큰 결단인지 압니다.
 
시인님께서 말씀하신 "날개를 접는 것은 비행의 끝이 아니라 더 깊은 비행을 준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그 한 문장이 제 글보다 한참 가슴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삶의 후반부에 필요한 날개는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날개가 아니라 한 사람 곁에 머물기 위한 날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의 날개가 하늘을 향해 펼쳐지는 것이었다면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온 뒤의 날개는 누군가를 품어주기 위해 접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인님의 「쉼과 여유」는 비행을 마친 사람의 시가 아니라 비로소 인간에게 도착한 사람의 시처럼 읽혔습니다. 평론가는 시인의 삶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론의 문장은 작품보다 앞설 수 없고 평론가의 사유 또한 한 사람이 살아낸 생의 무게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한 일은 시인님의 삶과 시 속에 이미 들어 있던 작은 불빛 하나를 잠시 손으로 가리켜 보인 것뿐입니다. 그 빛을 만들어 낸 사람은 제가 아니라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영하 시인님 자신입니다. 그런 글을 써놓고도 혹여 지나친 해석은 아니었는지 시인님의 삶을 제 언어로 함부로 재단한 것은 아닌지 마음 한편에 조심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따뜻하게 받아주시니 그 마음까지 품어주신 것 같아 더욱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시인님께서 쓰실 시는 아마 예전의 비행과는 다른 비행이 될 것입니다. 더 높이 오르지 않아도 좋고 더 멀리 가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일, 외로운 사람 곁에 잠시 앉아주는 일 지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한 줄의 시를 건네는 일 그것이 어쩌면 시인이 마지막까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비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오래 날아본 사람의 시도 귀하지만 마침내 땅으로 돌아와 사람의 체온을 노래하는 시는 더 오래 남습니다.
 
이영하 시인님의 남은 시편들이 높이보다 깊이를 품고 속도보다 온기를 품으며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머무는 작은 활주로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삶에 지쳐 날개를 접고 싶을 때 시인님의 한 편의 시를 읽고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비행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귀한 말씀을 보내주신 시인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디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의 날들은 전투기의 속도가 아니라 저녁노을이 천천히 내려앉는 속도로 사람과 시와 삶을 오래 품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시인님의 다음 비행을 땅에서 한참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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